제목: 짙은 안개 속으로 새벽 강은 흐르고 - 경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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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08-07-22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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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안개 속으로 새벽 강은 흐르고 - 경춘선


(오마이뉴스 블로그에서 펌)




며칠 전에 동네 도서관에서 김윤식의 <내가 살아온 20세기 문학과 사상>을 읽었다. 유년기의 성장 체험과 중진 비평가 시절의 신중한 산책이 모두 흥미로웠지만, 경남 진영읍의 산골 출신으로 마산상고를 거쳐 국립교원양성소(현 서울대 사범대)를 나온 청년 김윤식이 당시 성동역 근처, 그러니까 제기동 옛 미도파백화점 부근의 국립교원양성소를 다니면서 50년대를 청년기로 보내야 했던 기록이 흥미로웠다.

한국전쟁을 청춘기로 보낸 윗세대의 전후작가군도 아니고 4.19를 청춘기로 보낸 후배세대의 4.19세대도 아닌, 더욱이 경성제대 출신도 아니고 서울대 문리대 출신도 아닌 김윤식이 낡은 점퍼 차림의 교원양성소의 학생으로 기차로 통학하며 힘들게 등하교하던 대목이 인상 깊었다. 그는 애초부터 계보나 계파와 거리가 멀 수밖에 없었다.

심악 이숭녕, 일석 이희승, 외솔 최현배 등이 신생독립국의 가난한 수재들을 위하여 당시로서는 먼 길을 행차하여 강의를 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외솔 최현배는 강의 시간에 전공 학문 대신 늘 페스탈로치 교육이념을 설파하면서 신생독립국의 예비 교원들에게 '나라 사랑' 정신을 길러주곤 했다는데, 그랬으면서도 C 학점 이상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랬는데 한번은 학우들끼리 학문적 쟁점이 붙어 성동역 앞에서 논쟁 아닌 논쟁을 하다가 마침 귀가하는 외솔 최현배 선생에게 자문을 구하였더니, 그 역 앞에서 30분이 넘도록 반듯하게 선 채로 학문적 해설을 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10여 년 후에 '파리의 택시운전수' 홍세화는 당시 성북역 외곽에 있던 서울공대 금속공학과를 그만 두기 위하여 당시 성동역에서 가까운 청량리역으로 가서 신탄리행 경원선을 타고, 또 그것을 타자마자 곧 성북역에서 내려서 다시 경춘선으로 갈아타고 그 다음 역인 신공덕역에 내렸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그때가 1967년 전의 일이다. 지금은 그렇게 여러번 기차를 갈아타지는 않는다.

이런 기억들, 잠시 언급하는 것은, 1939년의 오늘, 7월 22일에 경춘선 개통식이 거행되었기 때문이다. 사설철도회사인 경춘철도주식회사에 의해 성동역(城東驛)에서 춘천 사이 87.3 km가 완공되어 그 정식 운행을 앞두고 개통식을 가진 것이다. 1970년대 초반까지도 성동역에서 기차가 출발했다. 70년대 중반 이후에는 경춘선 기차가 성북역에서 출발했다.

이제야 이 블로그의 독자들과 서로 공감할 만한 시간대에 이르렀다. 성북역에서 기차를 타면 1시간 쯤 걸려서 대성리역이나 청평역에 이르고 거기서 더 가면 강경역 지나 춘천으로 들어간다. 90km도 채 안되는 거리지만, 그 사이의 강과 산으로 인하여 경춘선은 저 경부선이나 호남선에 밑지지 않는 문화의 퇴적층을 이루고 있다.


독특한 연기세계를 가진 배우 오광록은 "비 내리는 아침이면 시집 한 권, 노트 한 권을 가방에 넣고 서울 성북역에서 정처 없이 기차에 올랐다"고 회고한 적 있다. 고교 3학년 때는 30일이나 결석을 하면서 경원선이나 경춘선을 타고 떠돌면서 선로 수리공이 되기를 소망했었다고 한다.

얼핏 읽으면 값싼 언어로 포장된 인스턴트 사랑시 같지만, 쉽고도 단정한 언어로 삶의 쓸쓸함을 다룬 시인 강윤후는 시 '다시 성북역'을 썼다. 그 일부를 읽어보자.


대숲처럼 마음에 빽빽이 들어찬 세월 비우지 못해
나는 자꾸 무거워진다, 갈 곳 몰라서
떠밀리듯 살아온 날들이 나를
처음의 자리로 되돌아가게 하는가, 성북
거기에 가면 기약 없는 내 기다림 아직
우두커니 남아 기다리는가
이제 열차는 종착역에 닿아 멎을 것이다


이처럼 꽤 많은 노래들이 이 노선을 경유하며 탄생하였고 적지 않은 시들이 은빛으로 반짝이는 북한강을 노래하였으며 몇 편의 소설들이 경원선의 작은 역사 밑에서 탄생하였다. 이순원은 소설 <우리들의 석기시대>에서 주인공이 여자 친구와 춘천으로 가는 기차를 타는 대목을 서술하였고, 북한강 쪽 경원선은 아니지만 양수리 쪽으로는 이윤기의 <두물머리>와 김인숙의 <양수리 가는 길>이 있어 강물 위의 안개를 그렸다. 정태춘은 '북한강에서'를 불렀고 정호승 시인도 같은 제목의 시를 썼다. 그 일부를 읽어보자.


사는 날까지 살아보겠다고
기다리는 날까지 기다려보겠다고
돌아갈 수 없는 저녁 강가에 서서
너를 보내고 나니 해가 진다
두 번 다시 만날 날이 없을 것 같은
강 건너 붉은 새가 말없이 사라진다



'북한강에서'가 수록된 앨범
그러니까 북한강변의 경춘선은, 험준한 산악지대를 관통하는 중앙선이나 영동선이 보여주는 장엄한 소멸의식과는 거리가 멀고 가도 가도 끝없는 길, 한없는 호남선이나 전라선과도 다르고 쿵쾅쿵쾅 대동맥이라는 경부선과도 다르다. 젓갈내음 가득한 경강선이나 장항선과도 다른 경춘선. 두 시간 채 못 되어 시발역과 종착역 사이의 짧은 사연들이 마무리되는 북한강변의 철로는 삶의 거죽을 스쳐지나가는 바람결과도 같다.

이곳에서 듣는 정태춘의 노래는, 특히 그 2절은, '짙은 안개 속으로 새벽 강은 흐르고 / 나는 그 강물에 여윈 내 손을 담그고 / 산과 산들이 얘기하는 나무와 새들이 얘기하는 / 그 신비한 소릴 들으려 했소'는, 다름아닌 시다.




지금 경춘선은 2010년 완공 예정인 복선전철 개통과 현리-청평간 고속도로 건설, 동서고속도로 건설, 가평 인근의 연인산 도립공원 종합개발 등으로 어수선하다. 차를 몰고 달리면 서울은 대성리까지 꾸준히 확장되어 끝없는 가설물들, 임시 컨테이너 가게들, 모델하우스, 골조를 올린 아파트 건설 현장이 연속되고 그 사이로 모텔들이 서글픈 조명을 빛내고 있으며 아예 천마산이나 남이섬 일대는 진실로 삶의 표층만 남아 있는 끝없이 확장되는 서울의 변경, 혹은 모텔 숙박업의 드라마로 이어진다. 그 사이로 경춘선은 여전히 달린다.

경춘선이 끝 닿은 데에 춘천이 있다. 오랫동안 이 도시에서 생활한 이외수는 에세이 '내 영혼에 내리는 어두운 비'에서 이렇게 묻는다.


그대 , 춘천의 봄을 아는가. 문득 잠결에 들리는 황사바람, 싸르락싸르락 모래알 쓸려 가는 소리, 그리고 몇 번의 시린 비가 다시 내리고 이어 몇 번의 식은 금색 햇빛, 그 다음 다른 개나리 가지 끝에서도 움이 튼다.


공지천으로 나가 보라. 아직은 겨울의 싸아한 기운이 스며 있는 바람에 눈을 씻으며 제방 비탈 돌 틈에서 파릇한 풀잎이 돋고 어느새 얼음은 모두 녹아 몇 척의 보트가 물 위에 떠 있다. 겨우내 문을 닫았던 목로 찻집도 문을 열었다. 헤어진 사람들이여 다시 만나보라.



그런데 행려객들이 그렇게 공지천까지 일일이 다 찾지는 않는 게 요즘 사정이다. 등산복 차려입고 곧장 외곽도로를 질주하여 소양호, 오봉산, 청평사로 달려가는 것이다. 멀리 양구 파로호를 지향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춘천은 그저 닭갈비 타운이 되고 있는지 모른다.


춘천에서 오래 생활한 소설가 한수산이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소설가를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등단작 <부초>를 시작으로 <바다로 간 목마>, <욕망의 거리>, <거리의 악사> 등으로 산업도시의 이면에 숨겨진 비극적 낭만성을 그려냈는데 그 주인공의 이름이 하나같이 '정윤수'였다. 한수산의 소설 속에서 '정윤수'는 너무나 멋진 사람이었다. 창백한 매력을 지닌 선생님이었고 욕망의 에스컬레이터를 탄 근사한 청년이었고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은 섬세한 기자였다.

아, 무엇보다 신문에 연재된 소설의 특성상 한수산 소설의 남자 주인공 '정윤수'는 매번마다 매혹적인 여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정윤수'가 사랑하거나 그를 사랑했던 여자의 이름은 '세희' 같은 매혹적인 이름이었다. '정윤수'가 세희의 블라우스 단추를 푼 적도 있지만, 세희가 '정윤수'의 셔츠를 벗긴 일도 많았다. 그럼에도 '3류 애정행각 소설'이 되지는 않았다. 그는 여리디 여린 감성의 언어로 박정희 전두환 시대의 가장 투명하고도 섬세한 내면을 직조해냈다.

한수산은 전두환 정권 당시에 <욕망의 거리> 필화 사건으로 고문까지 당하였고 이 소설의 연재를 책임진 시인 박정만이 극심한 고통 끝에 먼저 세상을 떴고 그런 사연들에 의하여 제주도나 일본 등지로 떠돌았다. 그는 강원도 내설악 출신으로 춘천교대를 거쳐 경희대 영문과로 진학을 했다. 한수산은 에세이 '시인의 집'에서 "집을 떠나야 하고, 집을 떠날 때 가야 할 것은 도시이며, 그 도시 춘천에 잠입하는 방법은 어떻게든 대학엘 가는 가는 것"이었기에 춘천교대로 진학을 했다.



경춘선의 종착역, 그곳에서 한수산은 안개와 더불어 살았다. 안개는 한수산을 때로는 환희에 들뜨게 하였고 때로는 질식할 듯한 절망으로 내던져 주었다. 문학사에서 '안개'하면 전남 순천을 배경으로 한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먼저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정윤수'라는 주인공의 소설을 여러번 읽은 내게는 한수산의 초기 중편 <안개 시정거리(視程距離)>가 기억난다. 서울의 병원을 탈출한 대학생 이규인이 춘천에 돌아와 친구를 만나고 애인을 만나고 후배의 죽음을 지켜보다가 다시 병원으로 돌아간다는, 고전적인 이야기인데, 작가는 인물들보다 춘천의 안개에 더 많은 정성을 들여 글을 썼다.

봄, 가을이면 오전 중에 햇빛을 볼 수 없게 만들던 그곳의 안개는 산업화가 그 도시에게 준 많은 것들 중의 하나였다. 땅값의 앙등, 유원지 개발의 레저 붐과 함께 그 시절의 청년들은 삶의 방식으로서 안개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 소설은 눈이 바라볼 수 있는 추상의 시정(視程)을 안개가 낮게 함으로써 치러내야 했던 그 도시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시정이란 공기의 투명도를 나타내는 말로서 기상관측에서는 10등급으로 나뉘어지며 안개가 낀 때의 시정은 3이하이다.

이제는 원로급 작가가 되어 '김유정문학제' 등을 이끌고 있는 소설가 전상국 역시 춘천 사람인데 그의 중편 <썩지 아니할 씨>는 춘천의 소양호 너머 화천, 양구의 슬픈 풍경을 그린 바 있다. 아래 인용문에서 나오는 '배후령'은 춘천과 화천을 잇는 46번 국도의 고개이다. 소설 속의 배후령은 현재도 최악의 구간으로 크고 작은 사고가 잦은 곳이다. 2010년에 터널이 개통될 예정이다.

큰형의 죽음을 확인하러 가는 고향길에는 짙은 안개가 우욱우욱 덮치고 있었다. 정말 대단한 안개였다. 이런 농밀한 안개가 두렵게 인식되면서 나는 수십만 길 깊디깊은 물 밑에 가라앉은 것 같은 단절감에 휩싸였다.

버스가 배후령의 8부 능선쯤에 이른 지점에서 사람들은 모두 아~하고 탄성을 쏟아냈다. 그 짙은 안개에다 천길 낭떠러지의 가파른 고갯길 곡예에 질려있던 얼굴들이 한꺼번에 활짝 펴지고 있었다. 버스가 느닷없이 그 깊은 안개의 늪에서 햇빛 속으로 솟구쳐 올랐던 것이다. 겨울산이 이처럼 선명한 색채를 띠고 아름다워 보인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46번 국도를 따라가면 화천이다. 그곳에 파로호가 있고 아마도 신경숙, 은희경, 조경란, 천운영 등이 일일이 필사해가면서 공부했을 소설가 오정희가 소설 '파로호'를 썼다. 아, 그런데 이쯤에서 그쳐야겠다. 1939년의 오늘, 7월 22에 개통식을 가진 경춘선은 화천까지 가지는 않는다. 게다가 오정희를 말하기 위해서는 오늘의 분량만큼이 따로 더 필요하다.

요즘 20대 후반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도시 세태 소설 장르인 '칙릿 소설'들이 유행한다는데, 안 그래도 몇 해 사이 주목할 만한 문학상은 대개 이런 경향의 작품들이 당선되고 있는데, 오정희 같은 작가가 쉽게 잊혀지거나 그런 작가가 있는 줄도 모르고 경향 소설들을 읽는 풍경은 아무래도 낯 뜨겁다. 아무튼, 곧 휴가철인데, 동남아 멀리 떠나는 사람도 있겠지만, 성북역에서 오랫만에 기차라도 타보자. 옛날의 객차는 오간 데 없고 전철의 자리 배치 같은 낯선 풍경이지만, 그래도 철로의 바깥으로는 북한강이 흐른다.

* 뱃사공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9-01-09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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