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짧은 여행
이름: 한잡민


등록일: 2010-02-09 15:43
조회수: 2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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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행 후, 새근새근

 

눈이사라질즈음이었어
 
오랜시간눈이도시에쌓여있을땐
강원이랑다를게없다는듯
거리를휙휙휘파람불며걸어다녔어
그럼여기가스웨덴이어도상관없잖아?
그러나
건물외벽에닥지닥지붙은간판들을봤을땐
그래여긴스웨덴은아니잖아라고대답할수있었어
싸인보드는
그건욕망의징후이기도하고
고단함의증거이기도하지만
어찌됐든이젠상관없어
상관없다는알게뭐람이아니고
의미없다와가까울테고
그래도좋다와비슷한의미이야
렛미인에서
아들이아빠를찾아가서눈위에서뛰어노는장면을
롱샷으로잡았을때
아그렇지거긴스웨덴이야라고느꼈었어
하얗게
세워진세상에서
고요히
아빠와아들이
풍경이되어달리는공간
으로이미지화된스웨덴만이자극되어진거지
거기엔
정치적다양성과
착한자본주의와
인간다운사회적안전망과같은
북유럽의이미지가들어서지않은
지구북반구의지리적풍경이가져다준
온전히좌표에의해의미되어진
이미지만떠올려진거지
그저보고싶고듣고싶었던거야
촘촘히박힌침엽수림이불러주는노랫소리를
오랜시간녹지않는부드러운얼음덩어리의처연함을
그속에서묵묵히흘러가는입김을머금은것들의휘파람소리를
그러나다소용없는것
그러나다의미없는것
그저비슷하게흘러갈뿐인걸
뒷동산에올라가도시를바라보면
아파트가만든스카이라인이부천까지이어져
그위용은
하얗게
눈쌓인도시의숨죽인무드마저도
무시하고
거부한채
입체적으로우뚝솟아시야를어지럽히기에
싹둑싹둑밑둥부터베어내어
그공간에
촘촘하게나무를심어놓고싶은마음도들었다지만
그렇다고
욕망의피라미드에눈을두고싶지않다고해서
피라미드를바라보러올라가는뒷동산을베어버릴순없고
그대로욕망자체인아파트를베어버릴순없는것이
생명
그리고
평화
는바로나의뒷동산에서시작
해야한다는생각이기에
우선
바로가깝고작은곳에서부터시작되는
사랑
관심
아픔
눈물
이중요할수밖에없어
이것이
세상을
유기체로느끼던
그물망으로인식하던
서로관계되어연결되었다고인정한다면
여기이곳이굳이스웨덴이아니더라도
이젠
더이상의미가없다는생각이든거야
하얗게세워진세상에서뛰어놀고싶은생각도욕망인건데
그게커지면입체적인욕망의피라미드아파트가되지않겠니?
꿈틀대는욕망을애써던져내며
산길에삐죽나온나무의뿌리를밟지않거나
구멍난양말을꿰매고구멍나면또꿰매신거나
파업중인궤도노동자를출퇴근이불편하다며욕하지않거나
쓰레기를뒤지는고양이에게한번정도는안녕하고인사를건내거나
먼하늘을바라보며울고있는행려앞에서냄새난다며코를막고지나가지않거나
하는게작고사소하지만스웨덴을떠올리는것보다중요하고
또한최소한의세계에대한예의인거같아

 

- 사진, 푸른내


어쨌든분명하게스웨덴은아닌이곳의눈이사라질즈음이었지
아파트단지내놀이터정자의처마에서녹은눈이뚝뚝떨어질때
세계의독재자
태양이
처마아래의눈덩이와부딪혀
존재를녹이며
속안에꽁꽁숨겨놓은
보석을
반짝
드러내게하는것을바라보던날의다음날새벽이었어
눈을떴을땐
동생이눈에울음을달고서있고
아버지는팬티바람으로날깨우고있었지
아침이아직도달하지않은캄캄한새벽네시
양수가흐르는것같다고병원에가자고했어
아버지는새벽
세상을움켜쥔자들의건물을지키러일하러가야했고
형은서울의북쪽에서살고있기에
그리고엄마는재작년가을동생의결혼식다음날
우리가한번도가보지못한여행지로먼소풍을떠나셨기에
출산전에맞춰서다음날밤에나도착할남편을기다리던동생은
엄마없이남편없이아기를낳게되는
생전처음겪게되는상황에대한
막막함과두려움에그만울어버렸나봐
형네집외에는소유한차가없는가족이기에콜택시를부르고
병원에갈준비를하며동생을달랬어
괜찮아
괜찮아
아직도달하지않은출산일
뱃속의조카는이제막새로운세상을향해
여행을하려고준비하려했다지만
엄마는아직시간이조금더필요했었던거야
낮에서서히눈이녹기시작해서밤사이다시얼어버린도로위로
무거운어둠을가르며택시가달려가
미처깨어나지않은병원건물로들어가서
아직밝아오지않은복도를지나서
침묵의공기가가득한메트리스위에동생이누워
자신의솟아오른배를쓰다듬으며아기에게말을거네
괜찮아
괜찮아
잘시간인데엄마가너무많이움직였지?
갑갑하면나와도돼아가야
간호사가설치해놓고간기계를통해서
아기의숨소리를들어
링거바늘이동생의팔뚝혈관에박히네
양수가흐르는게맞다고하네
의사는새벽,아직출근시간이아니야그래서병원에아직없어
관장을해야한다네
오늘중으로아기를낳아야한다고하고
아직아기문은열리고있지않아
이야기를나눠
불안감을덜어주려고
간호사가내진을하고가
간호사가올때마다대기실에서나가야돼
그짧은시간을바람삼아
복도의자판기에서달고따듯한커피를뽑아마시지
내진을하고가면동생은아파했고
뱃속의아기도설치된기계를통해서거친리듬을토해내곤했어
뱃속의아기에게
자꾸간호사언니가와서괴롭혀요?
라고말을걸어보기도해봐
아기의숨소리가다시평온해지네
아기문이아직일센티미터밖에열리지가않았다고말해주네
제부가깨어날시간에맞춰동생이전화를걸어
제부는비행기표를끊고나서시간을알려주겠다고하고
동생은제부에게패닉에빠지지말라고안심을시키지
출산때문에집에와있던동생과
일때문에중국에있는제부는
디지털로매일밤화상통화를했었거든
한달이넘는시간동안말이야
형수에게도전화를해
제부가출산에맞춰정확한시간에도착하지못한다면
형수가옆에있어주는것이더편안할거란생각이지
오빠인내가옆에서힘이되어주며출산을도울순없는노릇이야
옆의대기실에다른산모가들어오는소리가들리네
의사가출근하기전에그옆의또다른대기실에산모가들어오고말이야
칸막이너머로들어보니
두산모모두제왕절개로아침에출산을할예정인가봐
날이밝고도시가작동하기시작했나보네
의사가출근해서진료를하러왔어
아직얼굴에잠이달라붙은채로대기실로성큼들어오네
복도로나가서또달고따듯한커피를마셔
의사가처방을내려
유도분만촉진제를맞게되네
양수는조금씩흐르고아기문은더디게벌어져서인가봐
아직동생은큰진통없이누워서전화통화를하기도하고
간혹살짝졸기도하면서두려움을잊으려애쓰고있고말야
그사이
분만실로들어간다른대기실의산모들은
정말빠른시간이지났을뿐인데
벌써회복실에서입원을기다리며몸을추스리고있네
조카와형수가온다
이젠형수가동생의옆에서위로가되고힘이되줄거야
오전열한시에조카를데리고집으로가다가조카에게햄버거를먹이고
도착한집
집정리를대충하고청소를대충하고설겆이를하고
제부를마중하러가기위해조카와함께인천공항으로가지
신호등은어제와다름없이켜지고꺼지고
지하철도착과출발에맞춰서도시는흘러가는데
느린건지
빠른건지
가늠할수없는시간이무감각하게찰칵찰칵흘러가네
공항행버스를타기전에잠깐들른병원에서들여다본동생은
옆으로비스듬히누워
언니
언니
하며형수를고통스럽게타들어가는입술을벌리며찾고있어
몸의수분이서서히빠져나가버린다는듯이
형수를부르며허공에서맥없이휘젓는손조차타들어가듯보여
아직아기문은충분히열리지않았고
아기의여행은시작되지않았다네
조카와공항을향해가면서버스에서꾸벅졸아
조카는닌텐도테트리스를하며지루함을달래고있고
처음가보는인천공항은넓고권위적인자태야
인천공항에몇번와봤다는조카는아는체를하며
삼촌잘모르겠으면안내데스크에가서물어보면돼
라고친절한정보를자랑하네
조카에게음료수와먹을거리를마트에서사주고
의자에앉아
제부를기다려
출구에는
중국에서일본에서출발한여행객을환영하는
피켓을든여행사직원들과여행객의가족들이함께
웅성거리며주위를두리번거리고있네
제부가보인다
커다란여행가방을끌고
디지털제품이든무거운가방을메고
바쁘고급한표정으로
성큼
걸어와
택시
화끈하게택시를타
간단한인사를하고
동생의안녕을전하고
걱정하지말라는당부를전하고
무거운침묵으로시선을창문에고정시킨채
흘러가는회색의흐린풍경을바라보며병원으로가지
제부는출근하지않고급하게온듯
일과관련해서몇번의통화를하네
다섯시
동생은대기실에서분만실로옮겨졌고
그사이고통을완화시키려무통주사를맞았다하네
제부는도착하자마자경직된얼굴과커다랗게커진눈을슬쩍비쳐주고
분만실의동생옆으로성큼들어갔어
동생은배고프겠다
힘도없겠다
지치겠다
또고통스럽겠다
라는생각을하면서조카를데리고입원실에올라가서서소식을기다려
찰칵
찰칵
지금쯤은소식이들려와야하는데
찰칵찰칵
조카에게저녁거리를사다주고
궁금해할아버지와형에게전화를하고
뜨거운바닥에엎드려
소식을기다려
찰칵
시간은느린속도로


흘러가
조카에게
조용히티비를보고있어한시간후에다시올게
라고말하고분만실복도로가
기다려
의자에앉아팔꿀치를무릎위에올린채
손을비비고깍지를끼곤해
들릴지모를아기의울음소리에집중하며
기다려 
복도의커튼으로가려진강화유리건너편에서
이미태어난아기들이울어
신생아실의아기들이잠이깨서우네
젖달라고울어
기저귀를갈아달라고울어
한명이울다그치면다른한명이우네
그러다가여럿이울기도하네
쉬지않고신생아실의아기들이울음으로의사를표시해와




분만실에서형수랑제부가나온다
이미아홉시가넘었어
도시가작동하기전부터동생은노력했는데
벌써도시가침묵의시간으로진입해들어가는시간인걸
둘의표정이밝지가않네
둘의건조하고지친표정에서
분만실에서
동생과아기와힘든시간을함께한고단함이읽혀
동생은노력했대
아기도노력했다네
그런데아기문에머리가걸린상태에서
동생도아기도더이상힘을쓸수가없었나봐
엄마와아기의
노력과의지와믿음으로
얼굴마주보고세상에서만나려했는데
찰칵찰칵
한참흐른시간이
도저히더이상어찌할수없는상황을맞이한거야
둘은너무지쳤어

의사는간호사에게
산모배위에올라가배를아래로밀어아기가나오게도우라했는데
제부는단호하게
안돼
산모와아기가동시에힘들게되는것은못보겠어
라고거부의사를표시한후에
결국엔제왕절개수술에동의를했다네
잠시후에 
의사가복도로나와동생과아기의현재상태와
수술에따른몇가지가능성과결과에대해설명하고
가정법을동원하여겁을주고가는군
제부는무슨뜻이냐는표정으로
의사와나와형수의얼굴을번갈아쳐다보다가
셋이모두조금어렵고조금긴설명에대해대략난감한표정을지으니 
유료로통역을대행해주는곳에전화를걸더군
통역사는형수와먼저통화를해
제부는통역사를통해내용을전해들어
모두듣고나서상황을인지하네
조금웃긴생각인데
동생은아기에게온전히집중할수가없었어
아기문에아기의머리가반쯤걸친상태로있을때까지
수시로자신의상황에대해
자신의고통에대해
아기의현재에대해
제부에게설명해주어야했어
제부에게말을해줄수있는사람이그안엔동생말고없었거든
아기에게집중해서써야할힘을분산시켰기때문에
결국수술을할수밖에없는상황에이른게아닐까하는
조금웃긴생각이들었던거야 
동생은마취를하고시간이얼마지나지않아회복실로옮겨져
지쳐있지만산모와아기모두괜찮다고하네
간호사의이야기를듣고
형수는마치아기처럼
갑자기
아앙
하고울어버리고
제부는전화로영국의가족들에게세상에나온아기의소식을전했어
잠깐바라본아기는무척지친숨을토해내며포대기에쌓여있었지
지친산모도지친아기도한참을회복실에있은후에야가족면회가가능했어
간호사가부드러운포대기에감싼채안고온아기를보고
제부는조심스럽게아기의이름을부르며말을건냈고
나와형수와출산바로전에도착한형은작은숨을조용히토해내었지
모두에게
엄청나고

하루
였어
우린제부를한번씩안아주었어
얼굴이흥분으로빨갛게물든제부의넓은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었지
지쳐보였던아기가기운을차렸나봐
울음소리가들리네
엄마의뱃속에서세상으로
긴시간동안
짧은
첫여행을시작했으니
축하해달라고
아름답고
환하고
맑은
목소리로말하네
응애
응애

아기는태어난지일주일도안되어서
두나라의국적을갖게되었고
내가한번도가져보지못한여권까지벌써취득했어
엄마의아기문에끼인채조금은그로테스크하게
원추형으로생겨버리게됐던머리모양도
둥글둥글해진것같아
다음달이면비행기를타고
짧은시간만에도착하는먼거리의여행을떠나겠지
그시간이되면엄마와아빠와딸이떨어지지않고함께하는시간이될거야
그래서이건
앞으로무수히많은시간동안
스스로의의지에의해서건
주변의상황이밀고가서건
묵묵하게
다양한감정으로하게될

여행의시작에관한이야기야
아기의
짧지만아름다운

여행에관한이야기야
 
세상모든엄마와아기에게평화의마음전하게되는군
토닥토닥


- 사진, 푸른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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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자네와 함께 서울 가는 버스에 동승했던 푸른내 라는 친구,
그 친구가 얼마전 아빠가 되었다.
난해한 자네의 글에 밝은 기운을 불어넣으려구 두어장 빌려다 붙여준다.

..
모처럼 자네다운 글을 보니 반갑구만..
2010-02-09
19:27:17
푸른내
ㅋ.. 한잡민군(?)이 이 사진들을 어찌 알았을까 했는데 뱃사공이 붙인거군요.

흠.. 한잡민군의 글은 난해하긴 하군요
2010-02-09
22:01:37

[삭제]
정은씨
읽느라 애먹었습니다.....
그냥 아가사진보고 아......출산하신분이 두분이나 계시구나 하고 나갑니다
2010-02-10
11:24:16
잡민
쌩유, 뱃사공 앤 푸른내
난해한게 아니고 가독성이 떨어질 뿐이죠-_-;; 뭐, 게기는거에요. 엔터만 냅따 쳐대고 스페이스바는 누르지 않고선, 읽을 거니?, 라고 껌 짝짝 씹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거 정도. 그래서 읽고 나면 별 내용도 없는 글의 내용이 진짜 기억이 하나도 안 나고 스페이스바만 꿈틀꿈틀 떠오르게 하려는 거 정도죠, 뭐. 헤-.
2010-02-10
13:42:17

[삭제]
[prol]
아..난..이..런..글..좋..더..라..ㅋㅋ
한잡민님은, 푸른내님 2세에게 손가락과 발바닥에 관한 출연료라도..ㅋ
제 조카는 오늘이 세상에 나온지 딱 365일 되는 날이랍니다.
세상의 모든 이모,고모,삼촌들에게 행복을 주는 조카들. 쌩유베뤼감사!

^___________^
2010-02-11
21:00:44

[삭제]

몇년만에 들어와 보니 예전 그 한잡민님..방가방가^^
2011-04-08
09:56:58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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