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저 강에 죽어 간 사람 숱하지만..(펌)
이름:


등록일: 2007-05-12 15:30
조회수: 4759


“저 강에 죽어 간 사람 숱하지만
물만 들면 떼 타고 떠나고 싶어”

열두 개울 지나야 장에라도 가는 강원도 오지서
할아버지·누이 먹여살리러 어릴 적부터 떼 타
“천지신명이 돌봐줘서 그래도 이래 살고 있지”
막소주에 송어회 한 접시면 절창의 소리 줄줄

* 이지누의 인물로 세상읽기 / 강원도 뗏사공 박대형 할아버지


  
» 박대형은 평창군 미탄면 마하리 동강 가에 살았다.
젊어서 떼를 타며 번 돈으로 땅을 사서 농사를 지었다. 그러나 떼를 타며 돈만 번 것이 아니었다. 그 시절에 배운 노래 또한 절창이었다.


깜짝 놀랐다. 강을 거니는데 갑자기 늙수그레한 이가 바지를 벗어 어깨에 두르더니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첨벙첨벙. 손에는 삿대처럼 긴 장대 하나만을 든 채 가슴까지 빠지는 깊이를 마다 않는 것이었다. 허참, 난감한 장면이었다. 이윽고 깡마른 몸이 물살에 밀리기 시작하자 장대는 곧 지팡이이자 삿대가 되었다. 그 장대 하나로 버티며 목까지 빠지는 강을 훌쩍 건넌 것은 불과 2~3분 사이의 일이었다.

강을 건넌 그이가 되돌아서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이씨 아이래, 또 뭔 일로 이까정 왔는가 그래.” 그이는 이미 면식이 있는 터였다. 1994년 늦가을에 처음 만나 두어 차례 얼굴을 익히고 소주잔도 주고받았으니 아예 모르는 사이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이는 박대형이다. 1994년에 예순 다섯이라는 것을 알았을 뿐 그 이후로는 나이를 물어 본 적도 없다. 그저 그이가 하는 소리가 좋아서 지나는 길에 들러 소리 한 자락 듣고 소리 값으로 됫병 막소주에 맑은 물에서 자라는 송어회를 한 접시 내면 그만이었다.

마을사람 전부 떼 뜨기만 기다려

그이가 살던 곳은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마하리였다. 지금은 마을 안까지 아스팔트 포장이 깔끔하고 사진 속에서처럼 강을 물속으로 건너지 않아도 될 길이 생겼지만 그때만 해도 흙먼지 폴폴 일던 비포장 길을 터덜거리며 가야만 했다. 그래도 나는 나은 편이었다. 그이 말을 들으면 이랬다. “여게가 산골 아니오. 강을 끼고 있어도 첩첩이 산이라. 사람 사는 마을로 치면 이런 오지도 드물지. 오죽하믄 이 마하리에서 미탄까지 장에라도 한번 나가는데 열두 개울을 건너야 된다 말이오. 깝깝한 일이래.”

사실이 그랬을 것이다. 그이를 찾아가던 어느 날, 미탄면 버스정거장 곁의 밥집에서 이른 아침을 먹었는데 내가 마수거리였던 모양이었다. 돈을 내자 주인 할머니는 돈에다 침을 발라가며 그것을 다시 머리에 문지르기를 서너 차례나 했다. 왜 그러냐고 묻자 그날 마수거리로 받는 돈을 귀하게 여겨야 종일 장사가 잘 된다고 했으니 그런 습속이 남아 있는 것은 그만큼 다른 문화와의 교류가 적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미탄이라는 곳은 그랬고 그곳에서 열두 개울을 건너야만 닿을 수 있는 마하리는 더더욱 깊은 골짜기였던 것이다. 그이가 그토록 애절한 목소리로 소리를 토해 놓을 수 있었던 것은 젊은 시절 떼를 탔기 때문이다. “우리 아버이가 내 열여섯에 고마 풍을 맞았다 말이오. 그래 이 산골에 병원이 있소, 뭐가 있소. 그라이 손도 써 보지도 모하고 고마 돌아가시고 말았어. 그러이 할아버이하고 누이, 그라고 나만 덜렁 남았는데 할아버이를 부리 물 수는 없잖소. 공부를 배우지는 못했어도 인륜은 다 아는 거 아니오. 그래 묵고 살 거는 없고 보리쌀도 넉넉지 않으이 산에 가서 나물 조금 하믄 그거하고 보리쌀 하고 같이 삶아 먹고 그래 살고 그랬지 않소. 그러이 돈은 벌어야 하잖겠소. 그란데 이놈의 농사라는 기 돈이 되기는 되는데 그거이 손바닥만 한 땅 부치서 눈곱만큼 나오는 걸로 살기가 여간 힘든 기 아이라 말이오. 그래 떼를 타기 시작 했지. 그거 한번 타믄 우선 우리 세 식구 먹고 사는 양식은 구했으니까 농사짓는 거 보다는 백번 나은 일이라 말이오.”





그래도 어린 나이에 떼 타는 것이 힘들지 않았냐고 물으니 그때는 마을의 젊은 사람들이라면 누구 없이 전부 떼 타기만을 기렸다고 했다. 나이 든 사람은 또 그 사람들대로 패를 만들고 젊은 사람들은 기어코 나이 많은 사람들 밑으로 들어가서 떼 타는 것을 배웠다는 것이다. “어른덜이 기운은 우리만 못해도 경험이 오죽 많소. 그러이 겨울 지나고 슬슬 눈 녹은 물이 강으로 흘러 오민 여기저기서 어떤 목상이 떼를 띄운다, 이런 소식들이 들리 온다 말이오. 그라믄 인제 일 년 떼 타는 기 시작 되는 기래. 그라믄 농사는 전부 식구들한테 맡기 놓고 불알 달린 것들은 전부 떼 탈라고 줄을 서고 그랬지 않소. 나루터에 있던 색주집도 떼가 떠야 돈을 만져 볼 수 있으이 마을사람 전부가 강에 떼가 뜨기만 기다리고 살았다 말이오.”

그래도 그이는 나이가 어려 처음에는 떼를 타지 못하고 뗏목을 만드는 나무토막 곧 ‘적심’으로 떼를 만드는 일부터 시작했다고 했다.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뒤 사공 노릇을 했는데 앞 사공은 물길을 잘 봐야하고 뒤 사공은 앞 사공이 이르는 대로 ‘그레’라고 하는 노를 잡아야 하니 힘이 좋은 젊은 사람들이 뒤를 보는 일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떼를 탔지만 그이는 대처로는 나가지 않았다. 그는 골안떼 사공이었기 때문이다.

“서방님 떼 탈 때 맘 못놨지”

“나는 골안떼 사공이라. 골안떼 사공은 요 앞 진탄에서 영월 덕포까지만 다니는 떼를 모는데 진탄에서 덕포까지 가는 길이 젤로 위험한 길이라. 아우라지나 가수리에서 어데서 떼를 묶든지 서울까정 가는데 젤 위험한데가 몇 군데 있는데 황새여울하고 된꼬까리가 다 여 있는 거라 말이래. 거서 사람 숱하이 죽었지. 내가 아는 사람만도 여섯이나 거다가 묻었으이…, 시체도 못 찾았지. 떼는 박살나고 사람은 처박혔다가 어디로 나오는 지 알 수가 있나. 황새여울이라는 데는 강바닥에 바위가 많아. 그러이 앞 사공이 길을 조금만 잘못 잡아도 떼가 뿌사지고 된꼬까리는 강바닥이 우째된 긴지 턱이 졌어. 눈에 보이지는 않는데 폭포맨치 생깃다 말이여. 그러이 떼 머리가 먼저 강바닥으로 꼴아 박혔다가 떠오르고 또 뒤에도 같은 모양이라. 그러이 거꾸로 처박힐 때 떼를 놓치면 고마 죽는 기래.”

그렇게 이어지던 이야기판에 그이의 안 사람인 최금화씨가 껴들면 그이는 그만 기가 죽곤 했다. “아이고 이 양반 떼 탄다고 나서민 돈은 벌어 오니까 좋지. 그런데 그놈의 황새여울 된꼬까리 지나갈 때까지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 그러이 멀리서라도 그걸 보고 있어야지. 본래는 떼 뜰 때 여자들은 못 나오게 했어. 재수 없다고 하민서 말이래. 그래도 어디 그게 그렇게 되나. 영감하나 믿고 사는데…. 그러이 멀리서 떼 뜨는 거 보고 나민 저 앞에 저 산 있잖아. 저 까정 죽기 살기로 뛰어 가서 된꼬까리에 떼가 박혔다가 서방님 살아 나오는 거 보고 나서야 집에 돌아가고 그랬어. 거기만 지나면 아우라지가 금방이니까 영월도 금방이지, 내만 그래 한 기 아이고 이 동네 여자들 전부 그랬어. 그런데 그놈의 사내들은 그것도 모리고 돈 벌면 그새 집으로 아니 오고 투전을 한다며 색시 집에 틀어 박혀 엄한 여자 허벅지에 돈을 다 쏟아 붓는다 말이여. 저 영감도 그랬어. 한 두 번이 아녀.”

그이는 스물셋이 되던 해 마하리에서 제법 떨어진 비행기재 아래에 살던 열여덟 난 최금화씨를 아내로 맞아 장가를 들었다. 물려받은 땅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던 그이였기에 떼를 타지 않았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떼를 타면서 강가에 늘어 선 색시 집을 드나들며 투전한 것이 잘못이긴 하지만 그래도 살아서 자식 교육 제대로 시키고 이나마 사는 것이 큰 행복이라고 했다.

부자지간 같이 안 타는 게 불문율

“그래도 살아 있는 것 보믄 운도 좋았지. 나 보다 더 오래 타고 실력도 좋은 사람인데 재수 없으믄 된꼬까리에 잘못 처박혀서 죽는다 말이오. 지금 저 강이 소리 없이 저래 흐르고는 있지만 저 강에 죽어 간 사람이 숱해. 옛날에는 남자 하나 믿고 사는데 남자 죽어버리면 집안이 박살이 난다 말이오. 그런 가정들이 숱했지. 까딱 잘못하면 떼가 깨져서 집안에 숭악한 일이 생기지 않소. 그러이 죽아도 하나씩만 죽어야지 그 집안이 문을 닫지는 않을 거 아니래. 아버지 죽고 아들 죽으면 그 집안 문 닫는 거나 한 가지래. 그러이 아무리 부자지간이래도 같은 떼를 타지 않고 따로따로 타는 사람이 많았다 이 말이오. 나는 천지신명이 돌봐 줘서 그래도 이래 살아남아 땅뙈기나 부치며 살고 있는 거지. 아즉 건강하고 그라믄 된 거 아이래.”

그 시절 애환이 소리에 오롯이

요즈음은 래프팅을 하는 고무배들만 요란스럽게 지나가는 강을 바라보던 그이는 요즈음도 강에 물만 들면 떼를 타고 훌훌 떠나고 싶다고 했다. 그 마음이 담긴 것인가. 그이가 부르는 “황새여울 된꼬까리 떼 지나 왔으니/ 만지산 전산옥이야 술상 차려 놓게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라는 뗏목아라리는 애절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떠나는 낭군을 보며 아낙네들이 또 소리를 한다. “우리 집의 서방님은 떼를 타고 가셨는데/ 황새여울 된꼬까리 무사히 다녀가셨나.” 하고 말이다. 그렇게 아낙네들이 먼발치에서 낭군을 떠나보내면 갈보집 색시들이 나와서 떼꾼들을 꼬드긴다.    

“지작년 봄철에 되돌아 왔는지/ 뗏사공 아제들이 또 니려 오네/ 놀다가세요 자다가세요/ 그믐 초성달이 뜨도록 놀다가 가세요.” 그 소리를 들은 떼꾼들은 “갈보야 질보야 몸 걸레질 말어라./ 돈 없는 백수야 건달이 애가 말러 죽는다.”며 능글능글 강을 떠내려갔던 것이다.

문화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강물에 떼 한 동가리만 떠도 문화의 큰 숲이 생기는 것이다. 기층문화란 생산자가 그것을 스스로 문화행위로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것을 문화로 받아들이는 것은 오히려 소비자의 몫인 것이다. 넘쳐나는 사진기와 컴퓨터, 그리고 비디오의 방향을 한번 쯤 돌려보라. 다큐멘터리라는 거창한 이름에 경도되지 말고 이 땅의 뭇 어른들을 만나보라. 그들은 삼각형의 가장 밑변이기 때문이다.


  -목록보기  글쓰기
의견(코멘트)을 작성하실 수 없습니다. 이유: 권한이 없는 회원레벨
△ 이전글: 티베트 여행이 사람을 바꿨다 (펌)
▽ 다음글: (펌) 새끼 여섯 가슴에 넣고 하루도 핀한 날이 없어.. [1]
Copyright 1999-2023 Zeroboard / skin by DQ'Sty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