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창문을 열고...
이름:


등록일: 2005-06-19 11:27
조회수: 3655


mainphoto_bada.jpg (45.5 KB)


후배녀석이 하나 있습니다.
후배래봐야 한 학번 차이이니 이젠 그냥 친구나 마찬가지인 사이입니다만..
원래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외국계 대형할인점에 넥타이 메고 출근하던 녀석인데,
한 몇년 잘 다니나 싶더니 더이상 다국적'자본'의 노예가 되길 거부한다며
양코배기 지점장에게 '당신같은 사람과 일하고 싶지 않다'는
뭐 이런 당돌한 편지를 던지고 훌쩍 나오는 바람에
'자발적실업자' 대열에 들어선 친구인데요..


한날 저녁에 그 후배녀석이 전화를 했더랬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섰는데, 날은 어두워지고 돈은 사천원뿐이라는 둥.. 이러쿵 저러쿵..
그리고는 숲이네 홈피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
여긴마석.자동차의제국도로는자전거사람에겐빵빵.무서워더이상안갈것임.공포.자전거버리고집에갈것임.어젠솔직히잘기억안남.삭제바람.마석공단이주노동자눈빛은슬펐음.천마산스키장눈은안녕.화도고갯마루청소부아저씬마치고행승처럼슥슥빗자루질.흙탕물이튀었고얼마안가행려가됨.땀은삐질삐질.아,정말도론자전거에겐공포의제국.삭제해주세요.
........


그래, 제가 답글을 달아주었지요.


........
왜 가던 길을 멈추나? 모란공원 고개마루만 넘으면 다른 세상이 열릴텐데.. 인생도 그와 같아서 그 고갤 넘지 못한 사람들은 거기 고개마루 묘지에 그렇게 누웠고, 대충 눈 딱감고, 대충 무시하며 세상사는 사람들은 강바람 솔솔 맡으며 유유자적 잘 살고 있느니... 시커먼 이주노동자들에게나 삐쩍마른 청소부아저씨에게나 쓸데없는 눈길은 주지말아라... 그냥 눈 딱감고 달리면 되는 일...............  
어두워 지거든 진격을 멈춰라... 빵빵거리던 괴물들이 두눈을 밝혀야 할 만큼 어두워지면 가로등도 없는 경춘국도를 밟으며 자전거를 타고 있는 너의 생존확률은 저 나락으로 곤두박질칠 것이니..
그리구선 어디 공중전화를 찾아 내게 접선을 시도할 것..
........


뭐 대충 이런 '필담'을 나눈 우리는 청평에서 접선,
자전거를 차에 싣고 내처 바다로 향했습니다.


엔진소리도 삼켜버릴거 같던
한계령 안개길을 넘어
대포항에 들러 물고기 두마리를 썰어
스치로폼 도시락에 담고서는,
또 한참을 달려
늘 들르던 남애리 민박집을 찾아
잠자는 주인아저씨를 깨워 방을 구하고
물고기랑 파도소리랑 라디오소리를 안주 삼아
아침이 되면 기억못할 이야기들을
밤이 한참 깊어질때 까지 주절주절 떠들어대며
술잔을 주섬주섬 비우고
대충 잠들었지요.


사설이 길었습니다만,
얘기인 즉,
이러저러한 사연으로 양양 남애리 바다를 조우했다는 이야기 인데요..



혹여 이래저래 살기 팍팍하실까 싶어
기분전환도 하실겸 바다구경이나 한 번 하시라구요..^^


그 민박집 삼층에서 창문 열고 바라보는 바다풍경이 참~ 좋은데요..
마침 그날이 좀 흐리고 바람도 있던 탓에
파도소리도 유난히 깔깔해져서 참 듣기 좋았습니다.


모쪼록,
흐린 바다처럼 강건하시길...


(음악 끄고 바다구경 하세요.^^)=>


- 뱃사공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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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한
그 아저씨 아는 아저씨네여. 생에 그다지 도움이 안되져 헤헤
2005-07-11
19:39:59

댓글이 달려있어 반가워 들어왔더니 우군 자네로군..
이거 원 손님들이 계시니 함부로 교양없는 언어를 사용할 수 도 없고..^^
나의 삶에 대한 개인정보를 함부로 유출해 우군 같은 선수들이 이 성스러운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 맘대로 들어와 활개치게 만든 무리들을 반드시 찾아내 철퇴를 가하고야 말것이니... 쩝..
2005-07-12
01:18:37
들꽃처럼..
흐린 바다 잘 느꼈습니다. 뱃사공님의 후배에게 들려줬던 답글이 제 마음을 울렸습니다. 왜 가던 길을 멈추나?
고개마루만 넘으면 다른 세상이 열릴텐데...
많은 이들이 그 고개마루 앞에서 돌아서는 건 고개 너머의 미지의 세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겠죠.
대충 눈감고 대충 무시하며 자유롭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2005-07-19
11:05:20

[삭제]

들꽃처럼님 덕에, 여행자들의 자유로운 공동체를 꿈꾸는 뱃사공의 바램이 기운을 얻습니다..

눈물나는 바다를 보고 싶거든 늦가을 양양 남애리로 가세요.. 뱃사공이 늘 가는 그 민박집 삼층에 방을 구하고 베란다 창틀에 턱 괴고 앉아서 바다를 보구 있으면 가슴이 뭉클하죠..

아, 바다가 보구 싶네요.. 그 눈물나는 바다..
2005-07-19
23:53:11
공주
아~~ 바다 올려노셔서 바다가 보고싶어 지잔아용^^
오늘 예약했는데~ ㅡㅜ 그래두 이번에 즐겁게 놀다오고싶습니다 ~~^^
2005-07-29
12:14:15

[삭제]

바다...
녀석이 보이는 어느 언덕배기에 진정 소박한 민박집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열게되면, 그날은 대문을 활짝 열고 밤새도록 술판을 벌일 겁니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기억하는 사람들과 함께, 비로소 바다, 바람의 곁으로 달려온 기쁨을 새벽까지 만끽해보는 꿈 같은 상상...
어느 날 갑자기 '이전 개업'을 알리는 팝업창이 뜨면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넘어 달려오기만 하면 됩니다..
이 홈피를 잊지 않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2005-07-31
23:30:08
유니
ㅋㅋㅋㅋ 넘 종교적인 어투잖어,,,
2005-08-04
15:30:05

[삭제]
샘이
역시 뱃사공님의 언어유희는 따라갈자가 없군요..
그리고..남애리의 화단한 시야는 감동입죠
2007-01-15
20:19:44

[삭제]

남애리를 아시나요?
낯선, 낯설거 같은 바다를 아는 분이 계시니 새삼스레 반갑습니다.^^
2007-02-01
02:3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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