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의 기행

- 유년시절의 기행


나에겐 오래된 친구가 있다.
초등학교 동창이었던 그 '아이'는
내게 처음 편지를 써준 여자친구였고, 내가 처음 편지를 보낸 여자친구이기도 했다.
내가 세상과 조금씩 불화하기 시작하던 십대에 그 '아이'는 나의 멘토였고, 그런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알수 없는 위로를 받았다.

세상에 지칠대로 지쳐버린 삼십대 중반,
서울로부터 도망쳐야겠다는 결심을 굳힌 무렵
주섬주섬 짐들을 챙기며 뒤를 돌아보다 그 '아이'에게 전화를 했다.


- 나, 춘천 간다..

- 거긴 왜?..

- 그냥.. 살러...

- 또 왜 그러니.......


특별한 이유도 없이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도시에 '그저 살러 간다'는 말에 그 '아이'는 반쯤 한숨을 쉬었고,
난 딱히 내 삶을 설명할 수 없어 오년 뒤에 마흔이 되면 다시 찾아 오겠다는, 스스로만 기억할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흐를거 같지 않던 시간이 바람처럼 지났고
나도, 그 '아이'도, 오지 않을거 같던 마흔이 된 봄날,
유년시절 함께 뛰놀던 초등학교 교정에서 그 '아이'와 나는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 '아이'는 마흔이 되면 오겠다던 나의 약속을 기억하지 못했고
뭐 그런거까지 기억을 하냐며 새침한 소리를 했지만
귀에 익은 목소리와 표정들을 마주하는 것이 나는 그냥 반가웠다.


그러나
반가움과 낯설음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

유년시절의 흔적은 이제 찾아볼수 없을 만큼 변해버린 교정 벤치에 앉아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깔깔거리며 뛰어다니는 꼬마들의 모습을 보며
이젠 아이엄마가 된 '아이'와
서로의 아이들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오랜만에 맡아보는 서울 공기만큼
봄날 오후 내내 나는 낯설었다.


세월을 건넌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나는
오래도록
후유증을
앓는다.



이천구년
서울
mood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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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유년시절의 기행


사진가:

등록일: 2009-07-05 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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