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안에서 보내는 교신
  





타이레놀을 하나 더 먹었습니다.
스물다섯 시간 열차를 타고 오느라 몸살기운이 살짝 도는 군요.
이곳은 중국의 고도 ‘시안’.
삼국지에 등장하는 동탁의 ‘장안’, 또 당나라의 수도이기도 했던, 현대화 된 중국과 고색창연함이 공존하는 곳.

항저우에서 출발한 열차는 하룻밤을 꼬박 지나 다음날 오후가 돼서야 시안에 도착했습니다.
이 행성에 불시착한 이래 가장 긴 기차항해.
까막눈에 까막귀 이지만, 친절한 같은칸 사람들 덕에 무사히 먼길을 건너 왔군요.
자리를 잘못 앉은 인연으로 알게 되어 여행 내내 말동무가 되어 준 중국인 젊은부부와 귀여운 딸은 시안역에 내려 숙소 가는 길을 찾을 때까지 친절하게 안내해줍니다.
꼬마아가씨는 서운한지 눈물이 글썽글썽.
한국에 있는 딸들이 떠올라서 저도 코끝이 찡해지네요.

본래 이곳에 올 계획이 있던 것은 아닙니다.
볼 일이 있어 항저우에 왔다 일행들은 돌아가고 저만 불쑥 바람이 일어 아무 대책없이 최대한 오래 기차를 탈수 있는 곳을 찾다 시안까지 오게 됐지요.
중국 곳곳에 깔린 고속열차를 타면 8시간만에 닿을 수 있지만, 내륙의 속살을 엿보기 위해 일부러 침대열차를 택했습니다.
사는 일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여행은 우연에 몸을 맡기는 것이 꼼꼼히 준비된 것보다 나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참 무섭게 넓은 나라로군요.
스물다섯 시간을 달려오고도 겨우 대륙의 문턱만 넘었을 뿐.
낮에 들른 시안역사박물관에서 많은 생각을 해봅니다.
이 강대한 나라와 또 이 나라를 침략으로 흔들었던 일본이라는 또 다른 강대국 사이에서, 우리가 지난 수천년간 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 기적 같은 일처럼 보입니다.

이렇게 또 하나의 국경을 넘네요.
이것은 또 다른 시험비행.
블라디보스톡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 까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기 위한 훈련비행으로 더없이 맞춤한 여정입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복용하는 타이레놀의 양도 늘고 있지만 비록 약기운을 빌려서라도 주인장 스스로 바람이 되는 [바람 v3.0] 의 임무를 무사히 수행할 수 있도록 힘을 내보겠습니다.

삶은 이미 여행.
모두의 여행에게 축복을!



prol
시월의 마지막 밤, 시안에서 보내주신 소식을 여러번 읽었습니다.
삶은 이미 여행.
고단한 여정이든.. 행복한 여정이든.. 각자의 몫이 후회없이 마무리되기를 기도합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뭔가.. 환상특급열차 같은.. 느낌이 드네요.
어느새..11월의 마지막 주에 다다른 현실의 시계는 참..정없이 흘러갑니다.
찬 계절에 건강에 유의하십시오.. (--)(__)(--)

17·11·26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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