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100대 명반 - '김광석 네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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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그는 가도 청년 가객은 영원히

가장 빛나고 뛰어난 것은 나중에 있다. 김광석 4집은 그렇게 말한다. 정규 앨범으론 마지막 유작에 해당하는 이 앨범은 그의 디스코그래피에서 순금 부분이다. 염세의 빛이 스민 좌절과 불안, 그 와중에 언뜻 스치는 낯선 희망과 설렘 등이 오고 간다. 오고 가되 아름답다. ‘정신의 청년성’이라 할 만한 이 부분이 김광석을 김광석답게 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포크 음악은 형식적 단순성이 무기다. 그러나 그 단순성이 섬세한 자의식을 얻지 못하면 포크 음악은 쉽게 형해화된다. 생각해보라. 한국의 포크 음악이 얼마나 쉽게 ‘뽕짝류’로 기울어져 왔던가를.

김광석 노래엔 세상에 대해 끊임없이 긴장하는 자의식이 뚜렷하다. 예술가적 영혼은 정처 없는 것이다. 정처없이 부유하는 그의 영혼은 음파를 타고 듣는 이를 대책 없이 감염시킨다. 시인 안도현은 그의 노래를 듣고 ‘속수무책’이라 하지 않았던가. 김광석은 슬픔을 노래하되 통속적이지 않고 불안을 노래하되 과장하지 않으며, 희망을 노래하되 상투적이지 않다.

김광석다운 자의식이 가장 예민하게 드러나 있는 앨범의 첫 트랙은 이렇게 시작한다. “검은 밤의 한가운데 서 있어/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아/ 어디로 가야 하나 어디에 있을까/ 둘러봐도 소용없었지/ 인생이란 강물 위를 부초처럼 떠다니다가/ 어느 고요한 호숫가에 닿으면 물과 함께 썩어가겠지/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일어나’ 중) 가사처럼 그는 염세와 희망의 경계에서 서성이고 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검은 밤, 결국 썩어갈 부초 같은 인생, 이 흔하디 흔한 염세의 포즈가 봄의 새싹들과 동거하는 순간, 그리고 자기 주문과도 같은 ‘일어나’를 결연히 외치는 순간, 김광석의 감수성은 아주 새롭고 날렵한 것으로 바뀐다.

이어지는 트랙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 전하는 낯선 희망에 귀를 기울여보라. 시원(始原)에 대한 동경, 멀고 막막한 곳에 대한 그리움, 생의 낭만성이란 그런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실은 불안과 낯선 희망은 동전의 앞뒤 같은 것이다. 불후의 연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또한 눈이 아리고 가슴이 먹먹해진다. 슬픔에도 날이 서 있음을, 아픔에도 감당 못할 무게가 있다는 걸 전해준다. 이 절창을 얻기 위해서였다면 실연조차 기꺼운 것이 아니었겠는가. 가장 많은 대중적인 인기를 누린 트랙 ‘서른 즈음에’의 담담한 자기 회한과 연민은 일정한 시정(詩情)에 도달해있다. 무심한 듯 읊조리는 그의 목소리에는 아무리 눌러도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쓸쓸함의 테두리가 두껍게 쳐져 있다. 그의 요절 후 많은 가수들이 이 곡의 리메이크에 나섰지만, 모두 김광석의 울타리 근처만 기웃거리다 갔을 뿐이다. 1980년대를 결핍과 순정의 시대라 부를 수 있다면, 김광석은 그 두 가지를 온전히 몸으로 받아들인 사람일 것이다. 궁핍한 시대, 그는 세상과의 불화로부터 자신의 청년성을 끊임없이 수혈받았다. 염세와 희망의 경계에서 서성이던 순정한 영혼은 21세기를 몇 해 앞둔 어느 날 한 줄의 부음이 되었다. 그리고 그의 청년성 위에 영원성이 덧입혀졌다. 그는 가고 영원한 청년 가객은 남았다.

<이주엽 | JNH 대표>

  차가운 공기 사이로 떠오르는 이름, 가객 김광석 [1] 788
  아직도 그리운 그 이름. 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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