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무슨 재주로 연습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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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그랜저’를 몰던 티코 같은 가수가 내게 준 환상이여
그가 떠난 이후로 그의 자리를 대신할 사람은 안 나타나네

▣ 이석원/ 언니네이발관 멤버



2005년 12월 현재. 내가 속해 있는 ‘언니네이발관’은 두 달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콘서트를 하고 있다. 며칠 전 기자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김광석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 것이 아닌가. 슬며시 웃음이 났다. 바로 어제 콘서트에서도 김광석의 노래를 부른 나였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남들 하루이틀 하는 콘서트라는 걸 몇 달간 하려는 생각을 처음 한 것도 김광석의 1천 회 공연이나 들국화의 장기 공연을 염두에 두면서 구상한 것이었다.

‘왜 그 사람은 똑같은 레퍼터리로 통기타 달랑 들고 노래만 하는데 1천 회씩이나 라이브를 해도 사람들이 계속 몰릴까. 왜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과 경외 같은 것들 말이다.


당신은 불세출의 포크 영웅


내가 처음 그를 실제로 목격한 것은 홍익대 앞 주차 골목에서였다. 하얀 ‘그랜저’를 직접 몰고 어딘가로 웃으며 달려가던 그를 보고 ‘야, 김광석도 그랜저 모는구나’ 하면서 신기해했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김광석은 어쩐지 프라이드나 티코 같은, 그것도 아주 허름한 차를 몰고 행여나 운전하다가 시비가 붙어도 그 하회탈 같은 웃음으로 넉넉하게 웃어줄 것만 같은 사람…. 물론 환상일 것이다. 그러나 그가 사라져버리고 난 지금 그런 환상을 던져주는 가수가 없다. 왜 그럴까.




△ 김광석 사후의 포크시장은 아직도 '무주공산'이다. 그가 어릴때부터 결혼할 때까지 살았던 서울 창신동의 모습. (사진/ 박승화 기자)


나는 종종 돈을 받고 음악글을 쓰는데, 김광석 사후의 우리나라 포크시장을 ‘무주공산’으로 즐겨 표현한다. 시장의 주인이 그 하나뿐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으니, 무주공산이라는 표현이 결코 과장된 것만은 아닐 터. 문제는, 깃발만 꽂으면 차지할 수 있는 그 무주공산이 10년이 다 돼가도록 새 주인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이대로 영영 주인 없는 땅으로 남는 것은 아닐까?

대한민국 땅에 통기타 한 대 들고 저마다 제 목소리를 뽐내며 기똥찬 실력으로 라이브를 하는 가수들은 널리고 널렸다. 미사리에, 대학교 통기타 동아리에, 또 동네 어느 방 한구석에. 누군가 김광석보다 더 정확한 음정과 화려한 바이브레이션으로, 더 깊고 튼튼한 호흡으로 우렁차게 노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처럼 목소리에 슬픔이 배어나오는 사람은 좀처럼 만나볼 수 없다. 바로 그 ‘슬픔’이 김광석이라는 가수가 뿜어내는 매력의 핵심이고, 거기에는 그 어떤 재능도 연습도 당할 수 없는 것이다. 슬픔을 무슨 재주로 연습하겠는가. 연습된 슬픔의 표현이, 학습된 감정이 호소력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는가. 정말 안타깝지만, 내가 만나본 대부분의 통기타 가수들은 쓸데없이 명랑하거나, 아니면 궁상으로 빠지거나 둘 중 하나였다.

‘시대를 상징하는 목소리’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슬픈 땅에서 슬픈 세상을 살아왔기 때문에 애수 가득한 그의 노래는 언제나 우리 시대를, 이 땅을 상징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하늘은 그런 사람을 한 번에 하나만 내려주시나 보다. 그가 떠난 이후로 그의 자리를 대신할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 걸 보면 말이다. 1970년대에는 송창식이 있었고, 80년대엔 전인권이, 90년대에는 김광석이 있었는데 2000년대엔 아무도 없는 것을 보면 세상이 변한 탓도 있을 것이다. 2005년 지금이 상징이라는 걸 필요로 할 만큼 절절한 게 없는 세상이라는 증거가 아닐까?

모든 가치가 변하고, 정의로운 것, 그렇지 않은 것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지금이지만, 만약 김광석이 살아 있었다면 아마도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위로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해 있을 것이다. 항상 공연을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남의 공연을 모처럼 보고 싶어 예매 사이트를 뒤져보아도 내게 지금 필요하고, 내가 그리워하는 김광석이라는 이름 석 자는 없었다. 대신할 그 무엇도 없었다.

그렇다. 나는 요즘 그것이 못내 슬프고, 어떤 의미에서는 불행하다고까지 느낀다. 그것이 바로 김광석이라는 불세출의 가수가 내게 자리하고 있는 크기다. 홀로 무대에서 기타를 들고 하모니카 입에 물고 노래하는 그가 있는 공연장으로 거짓말처럼 빨려들어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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